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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

이 책이 복간되었다고.....

 

어릴 때 나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남의 집에 가면 새로운 책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친구네 생일잔치에서 케이크 먹고 애들이 우르르 나가서 놀 때 나 혼자만 그 친구네 방에 틀어박혀 몰래(?) 책을 읽고 있다가 나중에 청소기 돌리러 오신 그 집 어머니가 깜짝 놀라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니 진짜 민폐네... 

나는 우리반 그 누구보다도 집에 책을 많이 가진 아이였다. 몇 번을 졸라도 미미인형은 사주지 않으셨으지만 우리 부모님은 책값 하나는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다. (내 유일한 마론인형과 빈약한 인형옷 컬렉션은 그나마 전부 다른 어른들이 선물해 주신 것.)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동네 도서관에 다니고, 어른용 책의 양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몇십 년 이어온 서재가 따로 있는 집에 비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어릴 때에는 아무튼 그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방학을 앞두었을 때, 엄마는 앞으로 방학 때마다 전집 한 세트씩을 사주겠다고 선언하셨다. 네 동생한테는 약값이 많이 들고 너한테는 안 드니까, 그 돈으로 네가 좋아하는 책을 사주겠다고. (동생아!!) 방학식 날에는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총판의 종이상자에서 막 꺼낸 전집이 거실 테이블이나 TV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고른 게 아니고 엄마가 선택하신 거라 영 관심이 안 가던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것이 여덟 살 겨울방학 즈음 받은 계몽사의 15권짜리 초록색 전집 [어린이 세계의 명작]이었다. 흔한 이솝우화 그리스신화에 유럽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미도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 무엇보다 그때까지 본 어떤 책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정말로 그림이 아름다웠다. 개성 넘치고,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어린 마음에 사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섬세한 그림들도 있었다.

 

이 책들이 일본 고단샤講談社 [세계의 메르헨 世界のメルヘン] 24권짜리 세트를 계몽사에서 계약을 맺어 발행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아 어쩐지... '했다. 그 시절엔 일본 동화를 (일본 동화인 줄 알고서) 읽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 전집은 일본편이 유난히 자세하고 일본다운 그림이 가득했으니까. 양초에 그림을 그리는 인어가 입고 있던 기모노라든가 (인어니까 자연스러운 무릎꿇기 정좌ㅋㅋ), 사람들이 신고 있는 게다라든가, 산속에 서 있는 도리이라든가. 

 

그 동안 몇 번이나 다시 사 볼까 했다. 하지만 한두 권 빠진 중고세트가 20만원~30만원을 호가했고, 고단샤 책을 사려면 책값에다 한 질에 20kg이 넘는 무게의 해외배송료까지 붙었다. (그런데 J언니네 집에 놀러가니까 다 있더라 흑흐긓그흐그흐ㅡ그흑 내가 부러워서 정말)  

 

그런 책이 이번에 3천세트 한정판으로 복간된 것.

총 31권짜리라길래 고단샤 원래의 24권을 전부 들여오고 편집을 새로 한 줄 알고 두근거렸는데, 원래 15권+텍스트 빼고 그림만 15권+금색으로 인쇄한 1권이란다. ......뭐 이래?!

 

몇 번이나 살까 말까 망설였지만 신랑의 반대로 오늘 겨우 마음을 접었다. 신랑은 이 책에 추억도 아무것도 없는데, 나만을 위해 사기에는 30만원이라는 책값도 비싸지만 꽂아둘 공간도 비싸니까. 예약기간은 이제 끝났고, 5월15일 이후 나온다고 하니 국회도서관에라도 가서 찾아볼 생각이다.

 
고단샤에서 24권 전부 전자책으로 내면 꼭 사야겠다. 음, 선명하게 보기 위해 새 아이패드도 하나 산다고 하면 신랑도 반대하지 않을 테고. 하지만 고단샤 홈페이지에 가 봐도 이 쪽은 복간계획 전혀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분명 그림은 주로 금발의 공주님이나 예쁜 소녀가 나오는 부분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는데, 공주랑 왕자랑 행복하게 살았다 끝 하는 이야기는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자주 떠올리는 이야기 몇 개.

 

우선 미국편의 "이쑤시개가 된 히코리 나무" . 나무꾼이 커다란 히코리 나무를 베었는데 그 통나무가 산을 몇 날 며칠을 굴러다니다가 닳아서 이쑤시개만큼 작아졌다는 이야기. (난 대체 이 얘기를 왜 이렇게 좋아하지...) 그래서 결국 히코리나무는 소나무인가 호두나무인가. 뭐? 피칸이랑 같은 속이라고?  

 

"캘리포니아의 탄생"은 바닷속에서 흙을 좀 구해와 물이랑 섞어 부었더니 확 퍼져서 대륙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코요테가 덜 마른 흙을 밟으며 뛰어다녀서 튄 흙이 산이 되고 독수리가 낮게 날아서 산이 낮아지고 어쩌고 하는 지형 이야기였는데, 그때는 캘리포니아가 뭔지 몰랐고 몇 년 뒤에 Aㅏ 이게 그거?했다. 나는 초콜렛 중탕할 때 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주님은 공주님인데, 동화 속 착하고 예쁜 공주님인데, 왕가가 매우 가난하고 공주 본인은 열 명 넘는 동생들을 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신세인 공주이야기도 자주 떠올린다. 요정인지가 소원을 이뤄주마고 했을 때 빈 소원이 '오늘이 아빠 월급날이 되게 해 주세요'였던 이야기. 임금님이 월급제 그것도 박봉이었다는 게 충격...

 

남편 말 안 들어서 쫓겨났는데 남편이 짠했는지 소원을 들어주는 황금 깃털을 주면서 차카게 살면 데리러 온다 하는 이야기는 자세히도 생각난다. 모든 마법 아이템은 소원을 1회 또는 3회로 무조건 제한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깃털은 그런 것도 없다... 막 쓰면 됨. 이 여자는 남의 집 가정부로 취직해서는 매일 계속 자동청소 자동세탁 자동다림질을 소원으로 빌어서, 일 잘한다고 마님의 총애를 받는다. 유능한 미혼녀 행세에 다른 남자들이 몇이나 다가와 돈 줄 테니 결혼하자 했는데 (미소를 띠며 남자A에게 끌어안긴 채 그 돈 받아 본인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그림이 생생하다) 돈은 받고 결혼은 안해주고 있으려니 남편이 데리러 옴. 뭐 이래...  

 

굉장히 루즈하게 일하는 자영업자인 구두장이 아저씨가 어쩌다 요정한테 구두를 만들어주기로 해서, 별것 아닌 줄 알고 덥석 받은 의뢰인데 요정의 발이 너무 작아서 그 아저씨는 그만.... 부지런한 명장 구두장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1. 요정구두 만드는 게 너무 싫어서 '아 오늘은 일하느라 바쁘니 요정구두는 다음에 만들테야' = 중간고사 전 방 청소하는 마인드로 딴짓(이 경우에는 본업)을 했다. 2. 요정구두를 만드느라 연구를 하다 보니 기술을 갈고 닦게 되어 사람구두 따윈 척척 만들게 되었다. 어느 쪽?  

 

뭐니뭐니해도 제일 상상력을 자극했던 이야기는 꼬마소년 이야기였다. 방 틈새에 손가락만한 꼬마소년이 살고 있는 걸 발견하는데, 나사인지 못인지를 누르면 나도 그 크기로 줄어든다! 엄마아빠에게는 밖에서 놀다온다고 하고 사실은 작아져서 그 꼬마소년과 함께 내 방 틈새의 비밀공간에서 신나게 노는 것. 칫솔대를 부러뜨린 칫솔머리가 대형 대걸레 크기라서 그걸 밀고 다니면서 청소하고, 꼬마친구랑 같이 목욕도 하고. 난 종일 그런 상상만 하면서 지낸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주인공이 작아지는(?) 이야기는 참 많은데 엄지공주보다, 거인국에 간 걸리버보다, 나중에 TV에서 했던 작은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보다 이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 대학 때 하네츠키羽根突き에 대해 배웠을 때 '이거 그림책에서 토끼랑 너구리가 하던 놀이인데?' 했던 것처럼, 어릴 때 본 그림책이 원래 일본책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는 일은 비일비재.

 

* 박씨부인이 예뻤던 [어린이 한국의 동화]도 좋아했는데 이것도 계몽사. 계몽사 부도 났을 때 내가 다 속상하더만 회사가 팔리고 회장이 횡령으로 기소되고 별 일이 다 있더니 어찌저찌 영업재개는 한 모양이다. 화이팅입니다. 판매 내용은 계몽사 공식 홈페이지 http://www.kemongsa.co.kr/front/php/product.php?product_no=2820&main_cate_no=1788&display_group=1

 

* 엄마가 사 주신 전집 중에 제일 관심 없던 책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만화가 곁들여진 과학책. 이미 원소주기율표 같은 게 실려있었는데 아직 열 살이었던 나는 그런 부분은 전부 건너뛰고, 주인공들이 미래로 여행하는 마지막 한 권만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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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교 기념관에 "느린우체통"이라는 게 있다. 편지를 넣으면 1년 후 배달해 준다는 우체통.
작년에 신랑에게 쓴 편지가 어젯밤에 도착했다.


잊고 있었던 그 때가, 도착한 편지를 보니 사악 떠오르는 게 신기하다.
도로주행 연수를 받느라 차를 몰았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를 100km/h 이상으로 달렸는데도 시내운전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었다. 졸음방지턱이나 경고문이 너무 많이 설치되어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문득 조수석을 보니 운전 강사 아저씨가 졸고 있었고, 아직 새 것 같았던 분홍 테두리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통행료를 냈고, 돌아올 때 반포 즈음에서 조금 길이 막혔다.
파란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웠던 기념관. 매점에서 음료를 샀고(남양유업 까페라떼 하얀색이었던 듯) 느린우체통을 발견하고는 두근거리며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신랑이 점점 더 보고 싶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신랑이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편지 내용을 보니 집에서 삼성이랑 롯데 야구를 보고 있었군. 지나치게 애틋해서 조금 부끄럽지만, 쓰길 잘 했다. 역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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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화관 예고편 시간에 이대호랑 송중기가 훌라후프 돌리는 옷 광고가 나왔는데
동생이 얼굴을 붉히며 살짝 한숨도 쉬면서 하는 말이 "송중기는 좋겠다"

송중기가 좋다가 아님...

 

이대호랑 훌라후프 하면서 노니까 부럽대. 아니 나도 이대호선수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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